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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37

#현우의500자 _37


외가에 놀러 가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부엌이다. 현대식 부엌이 아니라 아궁이가 있고 그 위에는 어릴 적의 내가 몸을 잘 포개어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큰 솥이 있었다. 솥 안에는 뜨거운 물이나 숭늉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향을 내며 끓고 있었다. 부엌 안을 보면 아궁이만 붉었다. 벽과 찬장, 그리고 그 아궁이의 불을 떼고 있는 외숙모의 얼굴에도 그을음이 끼였다. 그을음이 끼여 원래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벽과 찬장에는 외숙모의 손길에 의해 그을음을 지우고자 한 흔적들이 보였다. 키가 작은 외숙모께서는 손이 닿는 곳까지 열심히 그 흔적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에 묻은 그을음은 닦아내지 않으셨다. 그 그을음은 더럽지 않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마음이 뿜어내는 불길을 담아대는 아궁이고 벽이고 찬장이다. 닦아내다 닦아내다 그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시 무던히도 넣고 있다. 마음을 시간을 장작을 섞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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