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의500자 _65
퇴근시간이라 버스가 만석이다. 버스 안은 따뜻했고 아늑했다. 사람들의 숨에 창문에는 김이 서렸다. 누구의 숨이랄 것도 없이 모두의 숨이 만들어 놓은 스케치북이다. 버스는 또 다른 정류장에 섰다. 앞문이 치이익거리며 열린다. 아기를 앞에 안은,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탄다. 내 자리에서는 조금 먼 거리다. 엄마는 아기의 엉덩이에 한 손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어깨를 톡톡 친다. 저기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나는 뒷문 앞에 가 섰다. 그리고 몇 정류장이 지나 내렸다. 나도 아기였던 적이 있다. 누구나 아기였던 적이 있고, 그 아기를 안고서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었을 엄마가 있다. 내가 아기와 아기 엄마에게 해줄 것은 없다. 자리를 비켜 준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일어난 사이, 그 자리에 앉지 않았던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버스 안의 스케치북에는 한 줄이 적힌다. 아가야, 엄마 품에 안전하게 있으렴. 버스는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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