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의500자 _71
어디로 가실 건가요? 크로아티아요. 등기 서류를 붙이러 늦은 오후 우체국을 다녀왔다. 우체국 안은 그날 보내야 하는 서류나 소포를 잔뜩 안고 있는 앳된 여자들이 몇몇 있었고 거의 매일 만나지만 내 눈을 보는 일은 드문 직원분들이 창구 안에 앉아 계셨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하나씩 올려놓고 있는데, 내 옆 창구에서 한 남자가 흰 소포를 전자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슬쩍 곁눈질을 하여 배송 주소를 읽었다. 소포는 내가 읽을 수 있는 방향과 반대로 올려져 있어 영어로 적힌 주소를 쉽게 읽어내려 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로 보내실 건가요? 크로아티아요.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 모두 기진맥진해 있는 내가 한 순간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진 나는, 조용히 흰 상자로 걸어가 포장을 조금 찢어 그 안에 들어가 양다리를 겹치며 눕는다. 팔 베게를 하고 한 숨 자려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결제해 주세요. 싫어요. 크로아티아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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