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의500자 _79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가 익숙하다고 해서 그가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지막이 형, 안녕이라 외쳤다. 차의 창문은 닫힌 채였고 속도 또한 늦지 않았기에 그에게 내 목소리가 닿았을 리 없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형이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침을 뱉었다. 왜 침을 뱉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누군가 먼저 바보라고 놀리고 나서야 형이 침을 뱉기 위해 입을 오물거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바보라고 놀리지 않고 형에게 다가가면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준다. 친구들에게도 바보라 놀리지 않으면 침을 맞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지만, 친구들은 꾸준히 바보형을 바보라 놀리며 침을 천재답게 피했다. 오늘 빠르게 지나가며 보았지만 형의 머리카락이 희게 세었다. 형의 이름도 모르고 2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바보 말고 형에게도 이름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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