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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정규직 애가 "정규직 애가(哀歌)" 2014.11.27. 취업을 하겠다며 휴학 신청 사유란에 '취업', 딱 두 글자만 홀연히 던져놓고 '신청'을 눌렀다. 신청을 하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내가 원했던 '취업'은 '미취업'으로 바뀌었고, 오히려 미취업이라기 보다 '취업 안해!'라는 어리광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취업이라 적긴 하였지만, 내가 '취'하고자 했던 직'업'은 애석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정규직이었다. 직업이 정규직이라니. 그렇다. 직업이 정규직인 것은 어느 회사든 똑같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회사 내부의 생활 뿐만 아니라 비슷한 외모로 변해가고 비슷한 취미를 갖게 되는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몇몇 .. 더보기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4.11.20. 나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은 기술 발전도 아닌, 우주 탐험도 아닌 인간 개인개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노예'가 있었다. 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노비 혹은 머슴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노예였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녀의 출생은 '재산 증식'으로 간주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 노비제를 없애는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인집에 '자발적으로' 남아 자유로인 노비를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남자 노비는 머슴으로라도 불렸지만 여자 노비의 경우는 그 이름.. 더보기
깃털 한 올 깃털 한 올 2014.11.20. 깃털 한 올의 무게에 사람이 쓰러지기도 한다.한 명한테는 한 올이지만,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한 올이면 무거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더보기
하루하루 하루하루 2014.11.20. # 1 최근 같은 문장을 다른 두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고 싶다." 라는 문장. 이동진 영화평론가 겸 기자의 책 '밤은 책이다'에 나오는 표현이란다.# 2 밥 같은 걸까. 밥 한 그릇을 가만히 보면 '밥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밥 한 톨 한 톨이 모여서 밥 한 그릇을 구성하고 있다. 그 한 톨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밥 한 그릇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그 밥을 먹고 으쌰으쌰 힘낼 수 없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예는, 나는 대문호라 불리는 빅토르 위고를 참 좋아하는데 그의 책 '웃는 남자'를 읽다가 느낀 점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낸 '웃는 남자'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반부에 정말 길고도 장황.. 더보기
고마운 일 고마운 일. 2014.11.14. # 4 집에 있으면 이유 없이 사람이 퍼졌다. 집에 있으면 행동거지가 자유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여러 미담들이 모여 있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있는 것이 편했다. 그러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집을 나가 신촌이나 홍대를 걸으면 사람이 신기했다. 아침에 나가보면 여자들의 갓 한 화장의 냄새가 풍겼고,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가정 전선 수호를 외치고 나가는 전사처럼 보였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노동의 숭고함이 보였다. 젊은 연인들의 스킨십에는 어색함과 사랑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신기했다. 사람이 사람.. 더보기
백수 백수 2014.11.14. # 3 백수 짓거리를 좀 하고 있다. 호기롭게 돈을 벌 것이라며 대학원을 휴학하고 몇 번의 회사 지원과 몇 번의 사업계획서 작성을 하였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형에게 카톡이 왔다. '열심히 살아라. 악착같이' 내가 답장을 했다. '힘드네' 다시 카톡이 왔다. '제일 쉬운기다.' 백수 짓에 스스로가 무안하고 민망하고 미안할 즈음이었다. 돈을 버는 친구들이 사주는 술과 밥을 당연하다 여길 즈음이었다. 익숙해질 만큼 이미 익숙해져 버린 백수 생활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은 '나는 잘 될 것이다'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자신감을 잃어갈 즈음이었다. 26살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두 아이와 한 명의 부인을 둔 형님은 나에게 악착같.. 더보기
나의 능력 1. 나의 능력 중 하나는 꽤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좋아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설명하다보니 이해가 쉽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쉽게 쓰는 것은 어려울 듯 한데 나에게 사람들은 글과 말을 쉽게 한다며 '무시'와 '경멸'을 보낸다. 나는 철학자보다 재담꾼이 더 좋다. 더보기
이야기를 할 때에는. 2012.8.15. 이야기를 할 때에는. 2012.8.15. 이야기를 할 때에는 되도록 집중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매번 찾아오곤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와 하고 싶은 주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흔히들 다른 이와 이야기를 할 때 공통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과 상호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만나서 각자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또 심지어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 만남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저 일리가 .. 더보기
“러브레터”를 보고. 2012.3.18. 권현우 몇 년 만일까. 영화 “러브레터”를 본지.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가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면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 없이 영화를 한 편씩 빌려보곤 하던 때였다. 일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지식이라곤 ‘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식민지’에 대한 내용이거나 우리나라의 ‘광복’에 대한 내용, 혹은 내가 처음 제대로 읽은 책인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조선총독부’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러브레터’라는 제목의 영화는 무엇인가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일본’이라는 것이 가지는 이전의 생각을 넘어, 단지 ‘러브레터’라는 네 글자만으로 내게 짧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러브레.. 더보기
헌혈, 이벤트 참여글 처음 헌혈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가 2000년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TV에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혈액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을 해서 공급한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고 “내가 가진 것은 내 건강한 몸 뿐이리라”라는 생각에 헌혈의 집을 향해 뛰어갔다. 고향의 마산 “헌혈의 집”의 간호사 누나들(당시에는 다들 누나였음)께서는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 헌혈을 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 해 주셨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생일이 지나자마자 헌혈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나의 헌혈은 시작되었다. 2002년 월드컵 정도였을까. 평소처럼 헌혈을 하기 위해 “헌혈의 집”을 방문한 나는, 이전까지 내가 보아왔던 사람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