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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9. 00:24 내 생각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20161128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선다. 평소와 다른 점이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찾을 것이며, 역까지 걸어오는 사이 누군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는 없는지 찾기도 할 시간.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날 것이며,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평소와는 다를 것 없는 일상.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백화점이든 대형마트든 그것이 있었던 어느 곳이면 어디든지,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보았을 일상적이면서 평소와는 다르지 않는 그 시간에 그것이 고장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스컬레이터. 때에 따라서는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무빙워크(moving walk)라고 해도 될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까지도, 아니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나 있다. 내려가는 길이 그것을 타고 지나가는 것 뿐이기도 하고 고장난 게 대수냐 싶기도 해서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위에 한 발자국 올려놓으면, 기분이 묘하다.

 

항상 눈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확인하며 움직인다거나 내려간다거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멈추어 서 있을 때, 몸과 마음이 느끼는 그 느낌. 쉽게 표현할 수는 없다. 내 발로 걷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조금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별한 일 없는 걸음걸이임에도 걸을 때 마다 요상한 전율을 느껴가며 걷다가, 멈춰선 에스컬레이터의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익숙해져있다. 마치 그것이 원래 처음부터 계단이었던 것처럼.

 

고장이 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고치면 다시 에스컬레이터는 원래처럼 사람들을 아래로 위로 실어 나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다시 그것이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그것이 움직이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그것을 타고 어딘가로 향해 움직일 것이다.

 

정치적인 용어라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인류는 진보해왔다. 불과 100년 전과 지금의 삶은 얼마나 다른가. 1000년 전과는 또 얼마나 다른가.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10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20년 전에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옛날이라고 부를 정도의 과거.

 

지금까지 인류는,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진보를 거듭하며 자유를 확대하여 왔다. 기술이 그럴 것이고 예술이 그럴 것이고, 나아가 정치가 그럴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당일(20161128), 한국이라는 반도국가에서는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에 집필진으로 참여한 교수 및 교사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지금의 국정교과서재편찬이 있기 전, 국정교과서였던 역사교과서가 정부가 검정하고 인정하는 교과서로 변경된 적이 있었다.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검인정 역사교과서 중에서 선택을 하여 역사를 가르치던 때를 끝내고 다시, 국가가 일률적으로 편찬한 역사교과서를 사용토록 하고자 한지 1. 그 결과물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이다. 과거에도 국정 역사교과서로 사용한 적이 있으니, 다시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는 반론은, 인류의 자유 확대와 사상적 진취성의 발전을 멈추자 주장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자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너무 방종하게 나아가고 있으니 멈추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것은 뒤로 가는 것이다. 느낌만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뒤로 간다고 느낄 정도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껴오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채 해결되지 않은 불평등과 부조리 등이 있지만, 성공했던 사례들을 기억하고 나아지려는, 나아가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런 욕망들이 모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향연을 준비하고, 예비해왔던 것이다. 이미 이룬 성취들을 지키고, 획득하지 못한 권리를 얻고 다하지 못한 의무들을 다할 마음가짐을 갖춰왔던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길게 논할 것은 되지 못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현대인이라면 신문을 펼치거나 뉴스를 틀어볼 것이며, 미래의 사람이라면 20164분기의 사료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멈추어 있었던지를. 그리고 결코 그것은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고 복고(復古)적인 것이었던지를.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그 위를 걸을 때의 묘한 느낌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반쯤 내려왔을 때 다시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서는 안된다. 익숙해질 것은, 지구가 멈추지 않고 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는 확대되어야 하고 권리와 의무는 정의로운 절차를 거쳐 획득되고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멈추면 모든 인류가 죽듯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손에 쥐도록 한 민주주의의 역사 앞에 멈출 수는 없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어 있다면, 그 위를 한 번 걸어보면 이 글이 이해가 더욱 잘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여, 그리고 지금을 역사로 만든 현대인들의 후손 미래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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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0. 23:18 내 생각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4.11.20. 


나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은 기술 발전도 아닌, 우주 탐험도 아닌 인간 개인개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노예'가 있었다. 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노비 혹은 머슴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노예였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녀의 출생은 '재산 증식'으로 간주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 노비제를 없애는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인집에 '자발적으로' 남아 자유로인 노비를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남자 노비는 머슴으로라도 불렸지만 여자 노비의 경우는 그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여자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어미가 노비인 경우에는 남편의 지위에 관계 없이 노비 지위를 물려주는, 말 그대로 노비 생산 공장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했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 각 개인의 권리가 중요 시 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연합국들로부터 받아들였지만 막상 나아지지는 못했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민주주의는 광복 이후 몇몇 독재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높여가는 인류 진보의 역사 속에 간과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그 국가의 선진성을 척도로 삼는다면 적절한 기준이 될 듯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역시 비용이 문제로 밖에 치환되지 않는다. 낙태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태어난 이들에 대해서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어제 내가 올린 아이디어는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더욱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한 친구는 "장애인은 안내견이나 자원봉사자가 있지 않냐."라는 질문을 내게 했다. 물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인 논리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선의'를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성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매번 그 도움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받을 수도 없고 또 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애 제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혼자 해결해나가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논의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선택권을 넓혀나가야 그 장애인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권리도 아닌, 의무도 아닌 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장애를 갖고 있다 해서 혜택이라 생각해서도 또 혜택을 준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인도 위에 서 있다면 가운데 노란 보도블럭이 보이는가. 그 보도 블럭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면 '저상 버스'라는 이름의 버스가 혹시 서 있는가. 그 버스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버스다. 지하철 역에 있다면 휠체어 리프트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 역시 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노비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극적인 사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시도 제도로서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그 내용에 대한 학습과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류 역사의 진보, 자유주의의 적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장애인에 대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왜 집 밖에 나와서 난리야?' 라던지 '누군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길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장애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 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그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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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6. 02:06 카테고리 없음

사고실험 2014.4.16.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구토를 하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구토소리다. 무엇을 토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토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한 것일까. 그가 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의 속에서 다시 나온 그 무엇이 과연 그의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는 무엇인가를 토하고 있었고 그 속에는 그가 이전에 보지 못한 응어리진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했음에 틀림이 없다. 술을 마시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한 잔의 술은 그에게 흥분을 주었겠지만 연거푸 이어진 술잔에서 슬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만약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회한이었을까. 안타까움이었을까.

누군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 어떤 것, 그 누군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단지 울부짖는 것 그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토하는 소리. 토를 하면서 그는 결국 아마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자신이 지금 취해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취함이 자신에게 일으킬 수 있는 변화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미 그것에 굴복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토를 하는 행위는 분명 눈물을 동시에 쏟아 낸다. 왜 그럴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구토를 본 적이 없는 나는 구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울고 싶은 생각에 구토를 하는 것이리라. 울고 싶다고 울 수도 없는 세상이다. 약한 모습은 강한 모습보다 강해보일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약한 모습은 단지 약한 모습에 머무를 뿐 그것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기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이기 싫은 사람들은 항상 구토를 했다. 구토를 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구토의 의지인 것인 양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으로 가고 싶었을까. 집으로 간다면 그의 집은 여기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을까. 아마 집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그곳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그는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제대로 구토를 하지 못하고, 다시 말해서 울지 못하는 남자는 집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마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새벽 1시가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집이라고 믿고 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가족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잠을 자거나 아니면 구토를 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입으로 하는 구토가 아니라 성기를 통해 하는 구토를 즐기면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유도해 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구토 행위 중 대표적인 행위가 섹스다. 섹스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은 이는 아무도 없다. 단지 그들은 울부짖고 싶은 마음에 또 구토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말해 울고 싶은 마음에 섹스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이런 생각에는 섹스 이후의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섹스를 하고 난 뒤 웃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무엇인가 쏟아 내었다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해방감이 엿보인다.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관계없이 그들은 자신이 몸으로부터 땀이라는 토사물을 흘려보냈고, 남자는 정액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액체를, 여자는 그에 못지않은 애액을 토해냈다. 이런 구토의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자식이라는, 흔히들 말하는 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아기들을 처음 접하는 부부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들 모두 울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토사물이 결합된 새로운 생명체를 보며 다시 한 번 구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가학적인지 웃으면서 구토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방송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구토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방송을 만든 사람들은 아마도 그런 구토가 자신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생각이 부끄러워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변태적 감성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리라. 남자의 구토소리가 멈추었다. 집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 집에서 구토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라. 아마도 그는 그 마음을 숨기고 짐짓 어른스러운 척을 하며 자신의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할 것이지만 그의 입가와 눈가에 묻은 구토의 흔적은 숨길 수가 없다. 구토의 흔적은 단 한 번 흘린 이후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산성이나 특수한 물질로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언제나 다시 구토를 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되어 있는 어떤 것은 항상 그 흔적을 남긴다. 마치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에게 구토란 그런 것이다. 눈가나 입가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는 그런 구토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옷을 입는다. 처음에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구토 흔적을 숨기고자 했기에 더욱 두껍고 더욱 불필요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남녀의 성기를 가리기 위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사람들의 논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 역시도 구토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성기는 결국 구토를 할 수 있는 외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 도구에 의해서 생명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 도구가 결코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필연적이라거나 하면서 변론할 필요는 없다.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입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위를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떨면서 땀구멍이라는 도구를 통해 구토를 한다. 그 구토의 흔적이 들키는 것을 마치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연권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옷을 지어 입었다. 여름이 되면 그 부끄러움은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구토의 흔적들과 구토를 할 수 있는 여러 도구들을 자랑스럽게 꺼내놓고 다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는 시간이 주는 일종의 사육제를 사람들은 즐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구토의 도구들과 공간을 드러내는 것은 구토의 도구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도구가 부끄럽지 않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식으로서 그렇게 도구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다닌다. 어이가 없다. 구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구토는 여름에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고 불리는 공간, 가족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과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여름에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니. 오히려 구토의 공동체화 혹은 구토의 세계화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에 온몸을 칭칭 감는 옷이나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어색해하거나 거북해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옷을 두껍게 입은 사람은 그의 구토의 흔적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체인 곳에서 다시 말해 모두가 자신의 구토의 도구를 드러낸 곳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도구는 다시 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도구가 도구의 위치로 돌아가니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옷을 두껍게 입은 사람을 한 여름에 만나면 거북하고 또 자신만이 구토를 할 준비를 드러낸 듯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구토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태어났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데 그 구토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가 된 사회에서는 결국 그것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가 구토의 흔적을 지우거나 구토의 흔적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형태로 진보되어 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구토의 흔적을 이리저리 숨겨보거나 숨기지 못할 바에야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숨기는 형태로 진보되어온 인류에게 있어 결국 구토는 하나의 종교로 까지 승화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수많은 종교시설에 가면 자신의 입을 통해서 구토를 설파하는 사람과 눈물로써 구토를 하는 사람을 신에게 가까운 사람이라고 인정하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구토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라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숭고하기 그지 없다. 자신의 토사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토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니. 그리고 누군가 남긴 토사물을 신성시 함으로써 자신의 토사물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게 만듦으로써 이렇게 사람들은 흘러가고 있다.

구두 소리가 났다. 여자의 구두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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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4. 00:35 카테고리 없음

내일은 없다. 2013.11.24.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고 한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며 자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고 한들,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내일은 없다'라는 말을,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오롯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일은 없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오늘일 것이며 사실은, 어제도 오늘이었다. 


시간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을 더욱 세분화 하기 위해서 시간을 나누게 되었고, 더 확장 시키기 위해서 1년을 만들게 되었다. 그때 시간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오늘을 오늘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이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늘이 있었다는 것만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이 올지도 모르고, 어제가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이 아니라, 단지 시간 상으로 '지나가 버린 것'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글에 역사를 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은 역사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 당시에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를 담되 그 역사가 10년 뒤, 100년 뒤에도 그 시대 전체와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 '글을 쓴다'라고 말할 때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슬퍼할 수 있고, 또 때론 기뻐할 수도 있다. 기쁨만을 가진 삶은 없고 한정 없는 슬픔만을 감정으로 갖고 있는 삶도 없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그 삶의 굴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려움은 숭고함을 낳는다고 했던가. 앞서 말 했듯이 역사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죽지 않고 죽은 뒤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 남아 그것을 글이든 말이든 사진이든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사례들이 있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감정의 극한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현실감은 매우 떨어진다. 우리가 직접 겪어 볼 수 없는 어떤 것은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보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둥글고, 우리가 글로 보는 역사, 기록된 역사 속에는 '어려움'을 느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증거들이 있다. 이런 증거들로부터 우리는 그런 어려움은 우리가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 확인 자체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키진 않는다.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곤, 당장의 식사일 수도 있고 자녀의 학업이나 취학, 혹은 자신의 연봉 협상 등일 수 있다. 이러한 것들도 어찌보면 '거시적'이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곤 지금 당장의 기분일지 모른다. 바로 10분 뒤에 후회할 일이라도 우리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가장 큰 근거로 삼으면서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 판단하고 설득당한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마치 지금은 모든 세계가 '기분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양한 사례에서,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기분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순간 기분 나빠 한다. '가진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더욱 중요해 보이는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복합되어서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비율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때로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경우도 빈번히 드러나기도 한다. 입장을 취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악의 입장이라도 그런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반가운 일이지도 모른다. 입장을 취한다고 했지만, 그 입장은 자신이 어떤 정신적, 물질적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매우 쉽게 바뀐다. 손바닥 뒤집는 것이 그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에게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몇 명이든, 자신이 가진 재산이 얼마이든 관계 없이 입장이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냐, 그건 또 아니다. 입장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자신의 상황이나 주변의 상황은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려운 기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준 말이다. 사람을 더 확장하면 '인류'라는 기준을 대입해 볼 수도 있는데, 그 인류라는 기준이 우리가 평소 쓰는 용어가 아니라서 다소 어색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태어난 이상 이 인류의 역사성 속에 매몰되어 버린다고 하면, 그 흐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그리고 그 기준이 인류의 보편적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은 결코 선만으로 가득찬 세상은 아니고, 오히려 자신과 입장이 다른, 가끔은 너무나 자명한 '악'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어찌 보면 고맙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없었으면 우리는 인간의 추악함의 끝을 지금 확인해 보았을지도 모를 것이며 독재가 만약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 독재를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결과론적 도덕론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앞으로 또 어떤 악이 펼쳐질지, 그것들이 인류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추악하고 클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의 어떤 사건들로부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수한 사례가 이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그런 잘못들을 아무일도 아닌 듯이, 또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차피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오늘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정의롭거나 인류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으로 살지 않으면 그 의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려움은 숭고함을 낳는다. 그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나 오늘일 수 밖에 없고, 지금도 지구 상 위 어디선가는 먹지 못해, 자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바통을 터치 받아 다시금 누군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 삶들에게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라는 따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고, 어제의 노력이 오늘의 보상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거짓을 들려줄 수는 없다.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내일을 살지 않았고 오늘만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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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8. 11:06 카테고리 없음

'후미에(踏み絵)'와 종북 논쟁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 일이지만, 지금의 역사를 만드는데 있어 과거의 역사가 도움이 될 수 있기에 한 줄 적어볼까 한다. 역사는 가르침을 주기보다, 부끄러움을 주는 학문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는, 늘어나는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후미에(踏み絵)'라는 것을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1612년 에도 막부의 수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기독교 금지령에 이은 탄압을 위한 절차 중 하나였다. '후미에'라는 것의 뜻은, '후무', 앞으로 나아가다, 걷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접두사가 된 '후미', 그리고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에'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림 위를 걷는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이란,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조각이나 그림을 뜻한다. 이 그림을 바닥에 두고, 기독교 신자에게 그림을 발로 밟고 지나가라고 했을 때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여기고 목숨을 살려주었고, 그 그림을 밟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킨 사람은 그 그림 위에 자신의 피를 뿌려야만 했다. 



                                                <'후미에'의 대상이 되었던 예수가 새겨진 판화[각주:1]


'후미에'는 자신의 종교를 검증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종교에 관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들은 있다. 조선 역시 이와 같은 역사는 가지고 있다. '절두산'이 그 증거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종교'의 수준을 넘어, 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죄악을 막는 것으로 생각했고 '후미에'와 같은 것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권력자나 주군에게 반발하지 못했다. 


일본의 예를 넘어, 미국의 상황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위스콘신 주 출신 상원이었던 매카시에 의해서, 공산주의에 대한 사상적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을 후대 사람들은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충분히 많은 자료들이 나와있으므로 설명을 생략하겠지만, 매카시가 행했던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930년대 스페인에는 내전이 있었다. 사회주의 성향을 가졌던 인민전선을 돕기 위해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스페인 내전에 스스로 참여했다. 그들을 일컫길 '국제여단'이라고 부른다. 국제여단이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막고자 했던 세력은 '프랑코' 장군의 파시즘 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프랑코가 승리하여, 스페인은 프랑크 독재의 시절로 들어가게 되지만, 이 '국제여단'은 매카시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임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 대륙을 몰아쳤을 때, 매카시는 국가조직 내에 있는 '국제여단' 출신들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국제여단에 소속되어 있으니 공산주의자다" 라는 낙인을 찍고자 했다. 하지만 매카시는 반발에 직면한다. 반발에 직면한 이유를 미국 독립언론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지 스톤'은 그의 책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국제여단이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긴 했으나, 국제여단이 추구했던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파시즘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매카시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파시즘'에 대한 선호를 나타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파시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했는가"


 이는 미국이 참전했던 세계 2차 세계 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모독을 의미했다. 매카시는, '국제여단' 소속이었다는 것을 하나의 '후미에'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했다 .


지금 한국에서는, 매카시즘의 흐름을 이어 받은 것인지 '종북 논쟁'이 한참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은 종북주의자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만 해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자신이 종북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 증명의 대상이 되는 것이, NLL 논란이며, 천안함 폭침 등이다.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표지 사진>


NLL 대화록 전문이, 국가정보원에 의해서 공개된 이후 사람들은 '후미에'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문서로 존재하는 '대화록'을 읽고, "당신은 이 문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가,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제 그 사람이 상식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은 "종북"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NLL의 포기가 북한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국내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아니면 종북주의자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서 폭침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묻는 사람은, 당신이 종북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논리는 자신이 개발한 논리가 아닌, TV에 나오는 권력있는 사람들이 정해 놓은 논리대로 자신의 생각을 맞추게 된다. 


'후미에'는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일본 막부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했다고 하는 '국내정치적 필요'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국가권력이 감시하고 사찰하고 또 정해진 것만을 믿으라는 것은, 과도한 집착이자 다른 국내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한 치졸한 수법임에 틀림이 없다. 그 당시의 일본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고, '종교의 자유'라는 것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무자비함 혹은 비이성성은 간과할 수 없다. 


역사는, 가르침보다는 부끄러움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지금의 한국은, '후미에'의 사례나 '매카시즘'의 사례에서 오히려 더욱 퇴보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무너지고, 통일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써, 북한과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 국민들의 사상을 제단하려고 하는 '종북논쟁'은 여기서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 이성이, 비합리적 광기 앞에서 풀처럼 쓰러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성'과 '합리'를 찾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p.s '종북논쟁'에 관련된 사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인식을 묻는 '후미에'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후미에'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일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것을 강요하는 권력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개 숙인 사람이 있다면, 같이 고개를 들도록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1.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278&docId=1529263&imageNo=10&categoryId=378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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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0. 18:08 카테고리 없음

높은 산은 그 뿌리가 깊다. 2013.7.10.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언제 처음 배웠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인지도 모른다. 언제 처음 배웠든 지금의 시점에서는 꽤 오래 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당시 교과서나 수업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는 '딴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지금에 와서야 글로 남긴다. 



히말라야 산맥에 대해서 배울 때였다. 히말라야 산맥은 판게아 이론에 의해서, 인도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만나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각층은 아주 미세하고 움직이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 단위가 '억' 년의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고 난 뒤, 우리의 몸이 땅이 되고 난 뒤 대륙판의 어느 모래 알갱이가 된 이후라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히말라야 산맥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높은 산맥의 모습 그대로 땅 속에 습곡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히말라야는 매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중국이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중국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의 국조(國祖)라고 할 수 있는 단군에 관련된 서술도 중국의 역사서에 비추어 그 연대를 계산할 정도이니 중국의 역사는, 역사의 기준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히말라야 산맥처럼 깊은 뿌리를 가진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 대전으로 인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할지라도, 미국이 국가로서의 역사를 가진지는 채 400년이 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미국 원주민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역사의 단절을 통해 국가의 건국을 설명하는 미국은 역사성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유럽 역시 같을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오롯이 지금의 이탈리아가 갖고 있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카이사르가 정복했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정복을 하기 보다 현지 사람들에게 자치를 허락하고 로마의 관리 아래로 들어 오도록 했던 게르만(지금의 독일), 그리고 카이사르가 그 땅을 밟은 이후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일컫어지는 브리타니카(영국),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부터 시작하여, 이집트까지.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긴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지금 자신의 높은 산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히말라야 산맥을 배우면서 생각했던 나는, 거기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단군 이래로 한반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한(韓)민족으로서의 역사를 일구어왔다. 고조선이 있었고, 고대 삼국이 있었다. 그리고 남북국시대에 이르러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던 신라와 대조영의 발해, 다시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지만 다시 통일의 기틀을 이루었던 고려와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역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조선까지.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습도 큰 산맥이 아닐까. 지반이 허약해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산맥이 아니라, 하늘과 같은 높은 높이로 우뚝 서있는 그런 산맥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이 가진 세계적 위상은 비대칭적인 형상을 가진 산맥으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도 깊은 뿌리가 있는, 장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에 그 본연의 모습은 언젠가 다시 드러날 것임을 믿음에 의심의 공간은 없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듯 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통해서 역사를 알려주는 듯 했고, 산에서 쉽게 보이는 고사리를 통해서 백악기 시대 공룡의 발자국을 알려주었다. 깎아내리는 듯 한 절벽에서 지구를 덮을 만큼의 많은 물이 있었던 시절을 알려주어 자연의 무서움 또한 알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처음 배울 때, 역사라는 것이 그 나라를 지탱하는 깊은 뿌리가 되고, 또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움츠리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몸을 활짝 피는 날이 오면, 같이 어깨동무 하고 평화를 위해서,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힘써 나갈 수 있는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기를, 역사와 히말라야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래본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묄새. 용비어천가의 이 구절은, 결국 우리에게 나무라는 자연을 통해서라도, 역사를 꼭 알아야 함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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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0. 01:13 카테고리 없음

'미시사'를 아시나요? 2013.6.20. 


어색한 단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시사'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경제학 전공자에게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익숙할지 모르나, '미시'와 '거시'가 수식하는 것이 역사(史)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역사의 연구 중에는 엄연히 미시사와 거시사가 존재한다. 


미시사는 말 그대로, 사람 한 명 한 명의 역사 혹은 각각의 물건들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역사나 컴퓨터의 역사를 연구한 것이 미시사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나폴레옹 한 명의 역사를 연구하거나 백범 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그 일종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나폴레옹이나 김구의 역사는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미시사는 아니다. 진실한 의미의 미시사는 바로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의 역사이며, 우리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은 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사건이나 사람들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런 역사는 거시사라고 불린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대부분은, 주요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을 위주로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들이 거시사가 지배해 온 역사의 큰 물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면 그 물줄기 속에 고고히 흐르는 한 방울의 물과 그 물줄기에 힘을 보태는 작은 지류 역시 역사라는 이름을 불리는 것은 어색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누구의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서 어떤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자신만의 역사 속에 큰 역사가 이해되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사소하지만 큰 결정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큰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작아 보이지만 더욱 절박하고 또 진실된 역사들이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를 바꾸고 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은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서 낫이나 쟁기를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라고.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혁명'이 아니듯, 동학농민운동이 '전봉준 운동'이 아니듯 말이다.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뒤의 사람들 있었기에 그들은 역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TV를 켜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게 되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예계 스타나 운동선수들, 혹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낸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가진 생각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듣게 되고 읽게 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 효과를 가진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궁금해하는 삶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들이 가진 지위나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지금 그 자리로 올라가도록 한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녀들을 키우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역할이다. 


TV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만의 역사들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역사를 우리는 만들어가고 있으면서 다른 이의 역사를 부러워하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역시 매우 허황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는 폭력성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네 시대를 조명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조명을 받는 이야기라는 것 역시 사실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삶이 의미가 있듯, 남의 삶에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가져야 되는 태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역사를 묵묵히 적어내려가는 수많은 민초에게 경외심을 가져본다. 


p.s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내 역사를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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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의 전사 2013.09.25 15:46  Addr  Edit/Del  Reply

    공감합니다..

  2. 이창준 2014.07.29 22:41  Addr  Edit/Del  Reply

    너무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디.

  3. 나룻배 2014.11.10 14:57  Addr  Edit/Del  Reply

    미시사에 대해 조사하다가 방문하였습니다.
    마지막의 문구가 미시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