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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2 ‪#‎현우의500자‬ _12 초등학교 입학 날짜를 알게 되고, 입학일자에서 정확히 한 달 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내 이름 그대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친구들이 놀릴 듯 했다. 손등에 눈을 대고 눈에 힘을 주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우주가 있었고 그 안에 파묻혀 고민을 했다. 초등학교에도 채 들어가지 않은 8살의 고민이 얼마만큼 컸을까마는, 당시에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이름을 바꾸어달라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났고,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요즈음은 어떻게 자신의 반을 알려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전지에 검은 매직으로 몇 반인지를 적어 테니스 코트의 .. 더보기
현우의500자_11 ‪#‎현우의500자‬ _11 '기회란 노력 1 리터를 증류해서 얻은 단 한 방울'. 몇 달 전 적은 글귀이다. 이 글귀를 적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적은 글귀임에도 의심은 여전하다. 정말일까? 정말 노력을 다한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일까? 내 주변의 사례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노력을 다하고 다하고 또 다해 자기 자신을 소진해 버린 사람에게도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반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수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보았다. 수많은 기회가 주어진 사람에게 되려 기회는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기회 한 방울을 찾아 헤메인다. 태어날 때부터 수표책처럼 기회 수첩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기회 수첩을 갖지.. 더보기
현우의500자_10 ‪#‎현우의500자‬ _10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를 대체할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사라져도 되는 것일까. 오늘 하루 가만히 몸져 누워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나만의 어떤 것이 무엇일까'의 대답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손과 발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머리 속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힘을 넣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탓인지 머리에서도 열이 났고 그 열은 몸으로 퍼져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생각보다 짧았고 또 생각보다 길었다. 추운 바람이 창문을 희롱하듯 넘어 들어올 때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가운 기운처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스로에게 들어오는 질문도 막을 수 없었다. 볼멘 소리를 지껄이는게 아닌, 내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오늘이 어떤 의미를.. 더보기
현우의500자_9 ‪#‎현우의500자‬ _9 '머리를 자르기 위해 머리를 기른다'. 머리가 길었기에 머리를 자른다와는 사뭇 느낌이 다른 말이다. 나는 머리가 잘려나가는 소리를 좋아한다. 긴 머리일 때는 스걱스걱, 짧은 머리일 때는 사각사각. 가위와 머리가 만나 내는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귀 옆에서 진행되는 소리이니 큰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머리가 잘려나가면서 나는 새로운 스타일의 머리를 갖게 된다. 내가 원했던 모양과 미용사가 생각하는 모양이 다른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완벽한 모양은 나오지 않으니 모험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때론 '언어'란 이토록 부족한 성질의 것인지 생각해볼 시간도 있지만 언제나 그 가위의 스걱사각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지곤 한다. 머.. 더보기
현우의500자_8 ‪#‎현우의500자‬ _8 양말에 구멍이 나 있다. 언제 생긴 구멍인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식당에 간 적은 없지만 이 사실을 늦게야 깨달은 나는 머쓱해졌다. 어릴 적 어머니는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그것을 바로 버리지 않으셨다. 작은 구멍은 구멍난 부분을 서로 맞대어 이산가족 상봉을 해주셨고, 다소 큰 구멍은 다른 양말의 목, 발등 부분을 잘라내 덧대어 양말을 기워주셨다. 양말을 기워신었던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부분은 멀쩡한 데도 불구하고 조그만 구멍 때문에 양말을 버린다는 것은 낭비라 하셨다. 매번 어머니께서는 이제는 안해야지, 하시면서도 양말을 기우셨지만 나는 그 기운 양말이 좋았다. 바늘 한 땀을 정성스레 기우신 양말을 신고 있으면 내가 가진 허술한 점, 내 마음 속의 구멍이 .. 더보기
현우의500자_7 ‪#‎현우의500자‬ _7 늦은 새벽이다. 나는 나와 체결한 약속을 지켜야한다. 500자를 채우지 못할 지언정 내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켜야한다. 술을 마셨다. 술을 왜 마시는가에 대한 변명과 핑계는 기득하지만 나는 그런 핑계를 대지 않는다. 내일 후회할 글을 오늘 적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펴보니 할 이야기가 많다.하지만 오히려 할 이야기가 많을수록 적을 이야기는 적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생각하는 이야기와 적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듯이 말이다. 익숙해진 시간들에 익숙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만 나는 술에 취했고 글을 한 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만큼 그 어려움을 다음으로 넘기고자 하니 내일에게 그 .. 더보기
현우의500자_6 ‪#‎현우의500자‬ _6 2014.12.09. 장갑을 낀 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럴거면 장갑을 왜 만들었나 싶다. 털신발처럼 장갑 안에 털을 덧대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해 본 들 설겆이거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나를 씻어줘. 나라고 이러고 있는게 좋을리 없잖아."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물을 틀어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을 물에 잠시 담궈둔다. 이렇게 하면 설겆이가 더 잘 된다. 하지만 이때가 문제다. 설겆이를 하기 위해 물에 담궈 두는 것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것까지만 물에 담궈놓자라고 생각하며 모든 그릇이나 냄비를 다 쓰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설겆이가 시작된다. 설겆이거리들도 나름대로 나를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버리지만 말아달라는 간절한 바람때문일.. 더보기
현우의500자_5 ‪#‎현우의500자‬ _5 2014.12.08 새 신발이 왔다. 새 신발이라고 해도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니다. 5년 전에 샀던 구두의 밑창이 망가져 그 구두를 샀던 백화점에 수선을 맡겼다. 한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내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물어본 즉, 신발이 분실되었단다. 백화점에 가니 수선비의 환불과 함께 새 구두를 준단다. 맞는 사이즈가 없어 택배로 보내준단다. 오늘 그 구두가 왔다 .새 구두이기도 하고, 질도 들어야 하기에 신고 하루를 보냈다. 지금 집에 돌아와보니 발뒷꿈치가 빨갛게 까져있다. 발뒷꿈치의 피부가 사라져 있었다. 처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다보면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구두는 사회일 것이다. 누구나 처음 사회에 나가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 상처를.. 더보기
현우의500자_4 #‎현우의500자‬ _4 2014.12.07, 겨울이 되면 형의 귀는 항상 동상에 걸렸다. 빨갛다기보다 검은 느낌의 귀에 어머니는 바늘로 죽은 피를 빼주셨다. 형은 아파하면서도 간지러워하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또 밖에 나가 놀았다. 추위는 형의 발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반대로 집안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어릴 적도 그랬고 지금도 추운 건 질색이다. 그렇기에 아픈 귀 때문에 잠도 푹 자지 못하는 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형에게 추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추워도 더워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노는 것에 더욱 재미를 느꼈다... 지금은 둘 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되었다. 가끔은 형이 찾고자 했었던 순수한 재미를 향한 열정이 그리운 것은, 내가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니면 예상되는 시련을 피해가.. 더보기
현우의500자_3 ‪#‎현우의500자‬ _3 2014.12.06. '부부의 주례사'. 10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왔다. 결혼식장 밖은 그렇게 추웠는데도 친구인 신랑의 얼굴은 붉었다. 붉은 얼굴 속에 웃음이 하얗게 빛났다. 신랑과 신부의 뒷모습은 마치 기둥과 같았다. 둘의 어깨에 다음 세대의 미래가 올려져 있었다. 가족의 희망이 있었다. 신랑신부가 주례사를 듣는다. 주례사는 보통 지겹거나 지루하거나 또는 딱히 듣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집중해서 그 내용을 듣다보면 참으로 당연하지만, 지키기 힘든 이야기들을 주례 선생님은 요구한다. 남편을 존경해라. 부인을 아껴라. 신뢰를 잃지 마라 등.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미 결혼한 부부들이 꼭 친구의 결혼식이나 가족의 결혼식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