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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_43 #현우의500자 _43 그으 짠 거 너무 많이 넣지 말어. 어허, 너무 많이 넣지 말래도. 먹을 때 생각도 해야할 것 아닌가. 먹다가 그만 먹을 수도 없는 걸 그렇게 짜게 만들어서 어쩔 셈인가, 자네의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네의 그 노력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많이 넣으면 자네 몸이 상하네. 내가 이러쿵 저러쿵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넣지 말게. 넣다가 보면 끝도 없이 넣게 되어 버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요리이니 이제 그만 넣게. 넣더라도 자네 것만 넣게. 자네 것도 아닌 것을 긁어 모아 넣으면 더이상 손 쓸 수도 없어. 자네는 젊지 않은가. 젊은 친구가 왜 그러나. 이제 그만 넣으래도. 그만 넣어. 시간이 흐르면 자네의 그것이 자네의 밑거름이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더보기
현우의500자_42 #현우의500자 _42 생명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일하게 가진 것이 자신의 생명인 사람들에게 너의 생명 따위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알 것이라 하였던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부관참시를 해야할 듯 하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을 갖고 단식을 하거나 분신 자살을 하였을 때, 그 목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직접 찾아가 단식을 말리거나 분향이라도 하는 덕성이 있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지 같은지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은 살려야 한다는 인식과 죽음에의 경외심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었다. 간디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저항은 단식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간디가 옛날 사람이라는 것과 지금의 세상은 간디가 넘쳐난다.. 더보기
현우의500자_41 #현우의500자 _41 늦가을이다. 인도에는 은행나무의 낙엽이 열매를 숨기며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이런 날은 달리는 재미가 있다.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옷을 재빨리 갈아입는다. 그리고 헬멧과 열쇠를 챙겨 집을 나선다. 시동을 건 오토바이는 그다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배기량이 작은 탓도 있지만 관리를 해주는 형 덕에 오토바이는 언제나 새 것 같다. 바닷가의 부모님 가게를 가는 길은 터널을 통해 가는 길과 터널 위로 나 있는 옛 도로로 가는 길이 있다. 토요일 오후의 옛 도로는 차가 없어 고등학생인 내 청춘에게 허락된 자유의 길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내리막을 달린다. 은행잎이 도로에서 나뒹군다. 동공에 노란 색이 번진다. 헬멧의 앞 커버를 들어 올려 가을이 주는 풍성한 향기.. 더보기
현우의500자_40 #현우의500자 _40 위로의 말 중에서 내가 가장 나쁜 말로 꼽는 말은 '남들도 다 그래.'이다.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사람이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는 그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밖에 없다. 그 간접성이 때로는 직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자신 역시도 겪어 보았던 시련이라는 확신이 들 때이다. 전쟁의 참화라던지, 분단이라던지 혹은 핵 폭발 등 극단적인 경험은 어찌 보면 일부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시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특수한 경험으로부터 배제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시련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비슷한 시련은 없다. 각기 다른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가볍게 이야.. 더보기
현우의500자_39 #현우의500자 _39 선인장은 참 말이 없다. 아무 말 없이 그리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 관심을 언제 주었는지도 까먹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도 선인장은 여전히 가만히 있다. 다가가 자세히 보면 가시가 보인다. 선인장에게 가시가 있는 이유가 뭘까. 지킬 것도 없어 보이는 이것에게 가시가 돋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져 선인장의 어원을 찾아보니 하늘에서 천하태평의 표시로서 내려 보내준 감로(단 맛의 이슬)를 받는 그릇이고, 신선이 손바닥으로 쟁반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닮았기에 선인장(仙人掌)이란다. 그럼 선인장은 천하태평을 상징하는 것일까. 가만히 서서 언제 여물지도 모르는 감로를 기다리는 것일까. 감히 말해보건대 선인장은 청춘과 닮아 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푸르고 .. 더보기
현우의500자_38 #현우의500자 _38 소풍 전날에는 슈퍼를 갔다. 소풍날 먹을 과자를 사기 위해서인데, 내가 가는 슈퍼는 정해져 있었다. 바구니에 먹고 싶은 과자를 사서 카운터에 들고 가면 슈퍼 사장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내일 소풍가는가베?"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답한다. 예! 사장님은 바구니를 다시 드시곤 가게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내가 살 수 없는 가격의 과자를 바구니 잔뜩 담아 오신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과자를 봉투에 담아 주시며 "내일 소풍가서 재밌게 놀다와라."고 말하신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양손에 과자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과자를 차곡차곡 가방에 넣으며 몇 봉지의 과자는 그 자리에서 까서 먹는다. 다음날 소풍에서 나의 과자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집에 오는 길, 과자를 .. 더보기
현우의500자 _37 #현우의500자 _37 외가에 놀러 가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부엌이다. 현대식 부엌이 아니라 아궁이가 있고 그 위에는 어릴 적의 내가 몸을 잘 포개어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큰 솥이 있었다. 솥 안에는 뜨거운 물이나 숭늉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향을 내며 끓고 있었다. 부엌 안을 보면 아궁이만 붉었다. 벽과 찬장, 그리고 그 아궁이의 불을 떼고 있는 외숙모의 얼굴에도 그을음이 끼였다. 그을음이 끼여 원래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벽과 찬장에는 외숙모의 손길에 의해 그을음을 지우고자 한 흔적들이 보였다. 키가 작은 외숙모께서는 손이 닿는 곳까지 열심히 그 흔적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에 묻은 그을음은 닦아내지 않으셨다. 그 그을음은 더럽지 않았기에 그럴지도.. 더보기
현우의500자_36 #현우의500자 _36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도 아니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탓도 아니다. 단지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을 들고 조용히 그것과 대면을 하는 것일 뿐임에도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필요하다면 말을 해도 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을 읽어내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어색하고 그 시도 자체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지겹고도 또 지겨운 독서다. 과거에는 시간을 보낼 일이 없어 책을 읽거나 썼다고 하는 낯 뜨거운 이야기는, 사랑방의 할아버지 담배 곰방대처럼 낡았다. 눈을 뜨면 우리를 부르는 0과 1의 합창 속에서, 그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두꺼운 책 한 권은 마음의 불편함을 준.. 더보기
현우의500자_35 #현우의500자 _35 술과 담배의 가치가 폄훼되는 데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에 살면서 이 둘은 우리의 삶을 망치는 대표적인 해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는 두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치와 섹스다. 현대 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할 때부터 우리는 이 둘에 의해 더 나은 하루를 꿈꾸고 살아왔다. 유일한 조건은 이것들의 건강함이다. 정치는 사회 속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의미의 미래는 제도와 타협이라는 오르가즘을 통해 일치된다. 섹스는 일부 문화권에 따라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동물의 마음 속의 섹스는 끝을 모르는 동굴이다. 섹스와 유사 섹스는 종교 혹은.. 더보기
현우의500자 _34 #현우의500자 _34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흔히 그리고 편하게 쓰는 표현 중 '우월한 유전자'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외모가 출중하거나 키가 다른 형제들보다 크거나 사회에서 요구되는 재능들(어학 실력, 노래 실력 혹은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붙이는 수식어이다. 일상 생활 나아가 이미 방송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일반화된 표현이다. 하지만 난 이 단어를 보거나 들을 때마다 차가운 바람을 맞는 듯하다. 왜냐하면 우월함은 열등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음을 뜻하면서 나아가 그것이 하나의 차별의 근거로써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차별했던 근거는 그들의 민족, 즉 다른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에서 연유했고 흑인 차별 역시도 그랬었다는 것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