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현우의500자_102 ‪#‎현우의500자‬ _102 한참 아침잠이 많을 초등학교 시절, 반쯤 감은 눈으로 아버지의 차에 올라탄다. 당시 아버지는 스킨스쿠바 강사를 하셨다. 강사 뿐 아니라 스쿠바 용품 판매 및 대여를 하셨다. 새벽에는 연습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게에 모였다. 모두가 모이면 새벽 찬 기운을 품은 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을 양손 가득 품어 팔과 다리, 가슴에 뿌리고 나서야 잠이 깬 나는 수트를 낑낑거리며 입는다. 산소통을 맬 정도의 체격은 되지 않았다. 스노클링을 하며 꽤 먼 바다에 나가, 새벽의 모습을 담아내는 넓깊은 바다 속을 보는 것은 우주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버지께서는 물 밖에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셨다 한다. 교육을 하실 동안 자유롭게 바다를 날아다닌다. 다시 육지에 착.. 더보기
현우의500자_101 ‪#‎현우의500자‬ _101 2005년 3월 공익근무요원이 되기 전 훈련소에 들어갔다. 4주의 짧은 훈련이었고, 훈련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다시 중대 건물로 돌아가기 위해 식사 전 대기하는 연병장을 지나려는 찰나였다. 내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 반가운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걷는 척 뛰어가서 외쳤다. 형! 대학 한 해 선배였다. 군휴학 이후 처음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형도 반가웠는지, 신기하다를 연신 내뱉었다. 서울의 선배를 그곳에서 보리라고는 나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다. 서로에게 훈련 열심히 받자는 격려를 남기고 다시 막사로 돌아왔다. 몇 일이 지난 뒤였다. 형과 내가 다시 식당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다. 형은 다른 중대원들과 함께였다. .. 더보기
현우의500자_100 ‪#‎현우의500자‬ _100 귀신이 힙합 리듬에 맞춰 랩을 한다. 조용히 하라며 다그치고 다시 한 번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또 내가 서 있었던 곳 주변의 물건들을 들추어본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귀신이 이번에는 경쾌한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한다. 서서히 짜증이 올라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것은, 분명 짜증나는 일이다. 오전 상암동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을 것이 있어 주민등록증을 제시했고, 분명 다시 받았다. 받자 마자 지갑에 넣으려고 하니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받았던 첫 주민등록증이다. 많이 닳긴 했지만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내 사진이 들어있는 민증이었다. 오후 연희동주민센터에 들러 미뤄왔던 전입신고와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한다. 정장을 말쑥하게.. 더보기
현우의500자_99 #‎현우의500자‬ _99 친구들이 집에 모였다. 우리집이 궁금하다 하기도 했고 내가 직접 만들어주는 한국 요리도 먹어보고 싶다고 하기에 초대했다. 적게 잡아도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교수님 한 분까지 모시고 우리집을 방문했다. 떡볶이, 탕수육, 김치 계란말이 등을 만들었고 함께 맥주를 마셨다. 따뜻한 시간을 보낸 후, 입가심으로 먹을 과일 통조림을 따기 위해 다시 주방에 갔다. 따개가 없어 칼로 통조림 위를 톡톡쳐가며 땄다. 술기운 탓에 쉽지 않았다. 그러다 손이 삐끗, 했다. 뚜껑의 날카로운 부분에 왼손 엄지 손가락이 베였다. 꽤 깊이 베였는지 피가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 나왔다. 화장실로 달려갔고 수건과 휴지를 사용해 지혈했다. 하지만 피가 멈출 기미가 없자 집 주위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일본인 .. 더보기
현우의500자_98 ‪#‎현우의500자‬ _98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공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하루는 놀기도 짧았다. 하지만 공부를 완전히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전교 100등 안팎의 성적은 유지했다. 이런 나에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반 1,2,3등이면서 동시에 전교 10등 안에 드는 세 명이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으면 방해했다. 책을 빼앗아 가거나 책상을 넘어뜨리는 등, 악의는 없었지만 괴롭힘은 괴롭힘이었다. 이 친구들은 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다시 책을 찾아 공부했다. 1학기가 지난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이 친구들은 왜 공부를 하는 것일까. 친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공부하면 재밌나? 나도 해볼까? 친구들이 반색하며 반긴다. 그때부터 제대로 시작.. 더보기
2015년 3월 11일 2015년 3월 11일 - 2014.03.11. 오늘은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형의 큰 아들, 즉 나의 조카의 생일이다. 불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은 음력 생일을 쇠지만, 나는 큰 조카의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으로 죽은 날, 우리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년 전에 일본 열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이 없다. 죽은 이들 중에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런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 더보기
오늘한시_14 ‪#‎오늘한시‬ _14 흰 머리 아저씨들 가득 나에게 누구의 아들이냐며 인사를 하는 아저씨들 가득 누구의 아들이라며 인사를 하는 아줌마들 가득 어머니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아줌마들 가득 놀라웁다 이 사람들 나의 아버지의 친구 나의 어머니보다 어린 친구 그런 친구들 같은 머리색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나를 보는 그 눈빛들 가득 언제나 청년처녀같은 그 모습의 어머니아버지는 내 상상 속의 모습인가 그랬던 것인가 돌아보니 내 나이 가득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보아도 적지 않은 나 가득 나이 가득 아버지 친구 아들의 결혼식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어머니 어머니아버지의 모습 그런 시절이 지나 내가 다시 그런 모습이 되었을 떄 내 아이들의 모습을 기억할 내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가득 가득 그리고 갸륵.. 더보기
오늘한시_13 ‪#‎오늘한시‬ _13 그의 방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널부러진 옷가지 자다 깬 듯 잠이 들 듯 이불 그리고 배게는 하나 둘을 놓을 공간 충분한대 오직 하나 그 하나의 베게에 자욱이 새겨 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그 자욱에 글씨가 스며 있다 흐르는 것은 막지 못하고 헤어짐을 멈추지 못했네 그 자욱 위 뒷통수 들이 밀어 다시 지우려 해도 잠들어 떠오르는 얼굴 눈물 짓게 한 그 얼굴 뿐 지울 것은 또 다른 눈물 뿐이오 씻어 지워지지 않는 그것은 눈물로 기운 이름 모를 십자수 흐른 것이 돌아오길 바라는건가 헤어진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인가 차라리 양말인 듯 하여 억지로 헤어진 그곳그사람 기워 내 옆에 붙여라도 뒀으면 하나의 베개 위 다시 쓰일 문장을 떠올리며 흐른 것은 멈추지 못하고 헤어진 것 기우지 못하고 .. 더보기
오늘한시_12 #‎오늘한시‬ _12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구름을 입 안에 가득 품고서 혀 위에 고인 물방울들로 목을 축인다. 배가 고파지면 지나가는 새 한 마리 꿀꺽. 자유란, 이런 기분이구나. 날고 싶어 뛰어올랐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세상이란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먹은 것이 나를 먹으려던 것이고 내 몸을 촉촉히 적시던 물방울을 직접 만나 그것들도 꿀꺽. 구름을 빠져 나와 바람 맞으니 시원하다 아래에 푸른 들판 보이고 친구들이 보인다. 나, 여기 있어. 넌 거기 있구나. 들리니. 하늘을 날아보았어. 이곳은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달라. 내가 하늘인 듯, 하늘이 나인 듯 해. 마른 하늘을 너무 난 탓일까. 몸이 마르고 입이 마른다. 한 마리의 새를 잡아 먹으려니 뒤따라 오는 몇 마리 새가 나를 치고 지난.. 더보기
오늘한시_11 ‪#‎오늘한시‬ _11 지나간 줄 모르고 시간 흘렀고 아무일 아닌 듯 하루를 보냈고만 의미 두고 싶은 하루가 있고 흐르는 것 시간과 강 뿐 아니라 추억인 듯 해 흘러갈수록 넓어지는 곳 그곳은 함께 열고 닫고 마음대로 할 줄 알았던 문 마음대로 닫지 못하고 아니 마음 그것이 그렇지 못하고 열려 제껴진 채 그곳 거부함이 없다 거부할 의지가 없다 그렇기에 함께 절구에 무엇 들었는지 묻고 싶어 높여 소리 외쳐보아 답은 없고 굶주린 길냥 으앙대며 노린다 함께 보는 달 같다고는 하지만 무어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채 다만 함께 하늘 아래 달 아래 별 아래 얼씨, 구나 절씨, 구나 오늘만 빌 것 아니라 내일도 빌어볼까 소원 함께 - 함께 나눠먹는 얼씨구나절씨구나, 정월대보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