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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한시_10 ‪#‎오늘한시‬ _10 기자는 너를 취재하기 위해 새벽녘의 어스름을 만났고 아침 나절 너의 향기를 전했다. 운전수는 간밤의 성애를 닦아내기 위해 쟁여두었던 걸레를 꺼내 유리창에 낀 너의 눈물을 치웠다. 역무원은 철로 위를 걸으며 어제와 다른 모습을 찾으며 눈을 좇았고 입에서 흘러나온 너의 한숨을 보았다. 어머니는 장롱 구석 밀어넣은 목도리를 꺼내 유치원 가는 아이의 목에 둘러주며 너의 뒷모습을 원망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햇빛에는 이기지 못한 너의 패배를 넌지시 안쓰럽게 보다가 이제는 그만 샘 내지 말라며 변하는 것은 계절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변하니 그저 그렇게 살아가자 내년에 만나자 전송했다. - 샘 내지 마라, 꽃샘추위 더보기
오늘한시_9 ‪#‎오늘한시‬ _9 난 두 개를 가졌소 남들은 하나라지만 나는 두 개를 가졌소 두 개를 가진 탓에 두 배를 움직여야 하오 하지만 그 걸음 나쁘지 않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나쁘지 않소 돌아와 하나를 만나면 가까이 하고 싶소 부비고 싶소 향기 맡고 싶소 잘 있었나 묻고 싶소 약속했소 멈추지 말자 약속했소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것 알았지만 그래도 약속했소 왜냐는 대답에 난 두 개를 가졌소 남들은 아니라지만 나는 두 개를 가졌소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모든 것이 되었소 그래도 나는 그 모든 것 나쁘지 않소 오늘도, 잘 있었소 묻고 싶소 - 내 심장 두 개 그리고 결혼 더보기
오늘한시_8 #‎오늘한시‬ _8 울지 말고 섹스나 한 번 하려무나 배고픈 것보다 그것 고픈 것이 살기 어려운 법이라는 걸 아직 알기 어려운 시기이나만 너의 골 그리고 너의 골 화알짝 열어 보일 사람 만나 보여주며 섹스나 한 번 하려무나 늘거 늘어져 사라져 없어질 몸뚱아리 마음뚱아리 아껴 두지 말고 울지 말고 섹스나 한 번 하려무나 씨파는 놈이나 씨파는 년이나 사라질 것 아끼지 말고 울지말고 그거나 한 번 해려무나 - 긴 머리 그리고 긴, 머리 더보기
오늘한시_7 ‪#‎오늘한시‬ _7 느저지는 시가니 적찌 못하는 한 주리 이리도 어려운 줄 알앗떠라면 해보지도 아났을걸 하는 후회따위 할꺼갓쏘 펴내지면 펴난대로 싸인 것들 퍼내는대로 마는 말 하엿찌만 남는 건 이뿌니오 우스며 삽시다 우스며 살아봅씨다 어찌되뜬 사라있지안쏘 그러면 되쏘 - 오늘한시 더보기
현우의500자_97 ‪#‎현우의500자‬ _97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정리하는데 꽤 많은 노력을 다했다는 것 뿐이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교탁 근처에 앉으신 교수들과 선배 그리고 동기 학우들을 위해서 내가 이 학교에 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말했다.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무엇인지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우리의 꿈을 이루는데 첫 시작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들이 이 정도인 것은, 이후 수많은 술자리 덕에 기억력이 감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 4개월을 다닌 학교였다. 20살의 4개월은 그 어느 때보다 밀도가 높았다. 10년이 지났고 앞으로 이 글을.. 더보기
현우의500자_96 ‪#‎현우의500자‬ _96 6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떴다. 전남 광주의 한 찜질방이다. 어제 목포에 도착 한 뒤 대학 동기 누나와 저녁을 먹고 가볍게 시내를 걸은 뒤 헤어졌다. 다시 버스를 탔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광주에 도착했다. 터미널 인근의 찜질방을 가려 했지만 보이지 않아 길을 물어물어 주택가에 위치한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남탕으로 향했다. 옷을 다 벗고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린 뒤 슥슥 몸을 씻었다. 한참 씻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학생. 나 등 좀 밀어줘. 아, 예. 70대 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다. 내 대답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등을 내게 들이밀고 계신다. 그에게서 받은 이태리 타월을 손에 끼고 나의 것과는 탄력이 다른 등을 스윽스윽 민다... 더보기
현우의500자_95 ‪#‎현우의500자‬ _95 뚱둥착뚱두둥착. 노래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선배와 친구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는 표정이다. 총무와 부반장 그리고 반장인 나로 구성된 우리는 모두 기타를 한 대 씩 품어 올리고 있다. 연습을 하여도 노래는 잘 부르지 못했다. 비오는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가 흐르던 중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담임선생님께서 수줍은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짐승소리에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걸걸한 목소리와 기타 음률 틈에 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섞이니 묘한 화음이 만들어진다. 기타를 배운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학교 축제에 올라, 가수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를 불렀다. 단 한 장.. 더보기
현우의500자_94 ‪#‎현우의500자‬ _94 외가쪽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 8시 즈음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외가쪽 친척들은, 자주 뵙지 못해도 나와의 관계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제사를 마치고 조상이 주신다고 하지만, 사실 외숙모께서 고생하시면서 만드신 제사 음식을 가볍게 나누어 먹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조상이 남긴 과거가 아닌, 가족의 미래를 위해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의 사촌오빠 즉 외가의 외삼촌 중 한 분께서 형과 나에게 용돈을 주셨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이 받은 돈이 내가 받은 돈의 두 배였다. 돈을 받아든 나는 인종차별하지 마라! 소리치며 돈을 친척이 가득 서 있는 거실에 세게 던.. 더보기
현우의500자_93 ‪#‎현우의500자‬ _93 태어나자 마자 몇 달을 울었다고 했다. 밤낮 없이 울어, 나를 낳으시곤 몸을 풀어야 했던 어머니께선 밤을 샐 정도로 나를 업고 옛 집 마당을 걸으셨다 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매일 울던 나의 얼굴을 옆집 할머니께서 보시더니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노랗냐며 병원을 가보라 하셨단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은 부모님은 내가 황달을 넘어 흑달이 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으셨단다. 발목까지 황달기가 내려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나는 바로 입원했단다.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해 간의 회복을 위한 치료를 받았단다. 아버지께서는 조선소 노동자셨는데 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는 길, 매일 들러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발을 꼼지락 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 더보기
현우의500자_92 ‪#‎현우의500자‬ _92 손이 하나 없는 친구가 있었다. 왼손 하나 뿐이었다. 혈관기형으로 오른손에 피가 많이 쏠려 잘라 냈다며, 친절히도 샤프심과 볼펜으로 예를 들며 자신의 기형을 설명해주던 친구였다.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이 친구는 오른손에는 항상 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술 흉터가 남아 있다고는 했지만, 붕대를 꼭 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붕대는 항상 깨끗했다. 언젠가 한 번 물었다. 너는 왜 붕대를 감고 있냐고. 굳이 필요없는 붕대를 왜 하고 있느냐고. 친구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내 없는 손을 보고 언짢아 할까봐. 같은 중학생이었음에도 친구의 배려는 깊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배려심에서 한 일이었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 더보기